뇌전증과 간질의 차이 : 질병 개념의 진화와 사회 인식의 전환

용어의 변화가 가지는 의미

과거에는 어떤 질병이든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이름을 기준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의학계는 단지 질병의 증상을 설명하는 차원을 넘어서, 환자에 대한 낙인이나 오해를 줄이기 위한 방향으로 용어를 바꾸는 추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간질’에서 ‘뇌전증’으로의 용어 변화입니다. 두 단어는 같은 질병을 가리키지만, 사회적 인식과 언어의 파급 효과를 고려해 공식 용어가 변경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뇌전증과 간질의 차이를 단순히 명칭이 아닌 사회, 의학, 제도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간질’이라는 용어의 유래와 문제점

오래된 전통적 명칭

‘간질(癎疾)’은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온 질병 명칭입니다. 한자로는 ‘간(癎)’은 경련을, ‘질(疾)’은 질병을 의미합니다. 이 용어는 증상의 겉모습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름으로, 뇌의 전기적 이상보다는 발작 현상 자체에만 주목했던 시기의 산물입니다.

 

사회적 편견과 차별 유발

‘간질’이라는 단어는 오랜 시간 동안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교육 현장이나 취업, 결혼 등 다양한 사회적 영역에서 '간질환자'라는 낙인은 불이익으로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과거에는 법적으로 결혼 제한 사유로 분류되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질병 명칭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질환에 대해 낙인을 찍는 용어는 환자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고, 치료 의지나 삶의 질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뇌전증’이라는 용어의 도입

과학적이고 중립적인 표현

‘뇌전증(腦電症)’은 뇌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이상 활동으로 인해 발작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질환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의학 용어입니다. 즉, ‘뇌의 전기적 증상’이라는 본질에 보다 가까운 용어입니다. 국제적으로는 ‘Epilepsy(에필렙시)’라는 용어가 사용되며, 국내에서도 세계보건기구(WHO)나 국제뇌전증연맹(ILAE)의 권고에 따라 ‘간질’이라는 용어 대신 ‘뇌전증’으로 통일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공식 명칭으로의 변경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공공기관에서도 기존의 ‘간질’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뇌전증’으로 대체하였습니다. 관련 법령, 의료 서류, 학교생활기록부 등에서도 ‘뇌전증’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국민건강보험이나 장애인 복지제도 등에서도 뇌전증이라는 표현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의학적 관점에서 본 두 용어의 차이

증상과 진단 기준

뇌전증은 뇌신경세포의 과도한 흥분으로 인해 반복적이고 비정상적인 발작이 발생하는 만성 질환입니다. 발작은 한 번만으로 진단되지 않으며, 뇌파검사(EEG), 뇌 MRI, 병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진단됩니다. 과거에는 이런 증상이 반복되면 '간질'이라 통칭했으나, 현대 의학에서는 다양한 뇌전증 유형이 존재하고, 발작의 원인도 유전적, 구조적, 대사적 요인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는 점에서 보다 세분화된 진단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치료의 진보

예전에는 약물 치료만으로는 발작 조절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지만, 현재는 항경련제의 발전뿐 아니라 수술, 신경조절 치료, 식이요법 등 다양한 치료법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특히 조기 진단과 맞춤형 약물 복용을 통해 80% 이상에서 발작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뇌전증은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질환이 아니며, 충분히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사회적 인식 개선의 필요성

언어가 인식을 만든다

질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대부분 질병 자체가 아니라 그 질병을 바라보는 언어와 시선에서 비롯됩니다. ‘간질’이라는 용어는 질병의 생리학적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던 시대의 잔재로, 현재는 의료인뿐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지양해야 할 표현입니다.

 

교육과 언론의 역할

의료현장뿐 아니라 학교, 직장, 언론 등 다양한 사회적 공간에서 올바른 용어 사용은 매우 중요합니다. 뇌전증은 특정인에게만 국한된 희귀한 질환이 아니며, 전체 인구의 약 1%가 앓고 있는 매우 보편적인 질환입니다. 따라서 더 이상 편견이나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무리 정리

‘간질’과 ‘뇌전증’은 동일한 질환을 의미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뇌전증’이라는 표현이 과학적이고 인권친화적인 공식 용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용어 변경이 아니라 질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환자 권리 보호, 나아가 사회 통합의 기반이 되는 변화입니다. 앞으로는 일상생활에서 ‘간질’이라는 표현 대신 ‘뇌전증’을 사용하여, 사회적 낙인을 줄이고 질환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함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어는 인식을 바꾸고, 인식은 결국 사회 전체의 태도를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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